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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 윤항중 수필가, "폭력은 폭력을 부르니"
김태정 기자 | 승인 2022.09.17 17:57

 

월산 윤항

 지금은 전군차원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지난날 병영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사고의 원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구타와 욕설,기합과 같은 사적 제재였다고 하겠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집단으로 어울려 생활하다 보면 사소한 감정 다툼이 주먹다짐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상하 계급이나 선.후임간의 위계질서를 구타나 사적 제재와 같은 비인격적이고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지켜 나가고자 하는 뿌리 깊은 구시대의 악습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겠다.

 나는 군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여러차례 구타로 인한 사고들을 목격하기도 하고 체험하기도 하면서 그 사람의 인격과 자존심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리는 구타와 같은 비인격적 행위는 병영생활에서 결단코 뿌리 뽑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마침 연대 수색중대에서 사단 사격선수로 편성된 1소대를 J 소위가, 그리고 특공소대인 2소대를 내가 맡게 되었는데 표준체구인 나보다도 다소 왜소했던 게 한이 맺혔던지 말 끝마다 주먹 자랑이요 00대학교 체육학과 출신인 자기를 몰라보느냐 면서 틈만 나면 소대원을 툭툭 쥐어박는 게 J 소위의 커다란 흠이었다.

 출신구분은 달랐지만 나와 같은 해 임관한 임관동기였던 그는 툭하면, 
“야! 윤 소위! 넌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며 시비를 거는가 하면  
“넌 도대체 주먹 쓰는 걸 못 봤으니 육사 출신답지가 않을뿐더러 박력이 없어 보이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얘기였다. 마치 나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건드려서 인내력의 한계를 테스트라도 해 보려고 작정을 한 사람 같았다. 

 게다가 “한국종자는 팽이근성이 있어서 ...운운 ”하며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둥 엉터리 궤변을 시시때때로 늘어놓기가 일쑤여서 그때마다 신경전을 전개해 오곤 했었다. 

 “이사람아! 오죽 못났으면 말로 다스리지 못하고 부하에게 주먹질이냐?” 
그러다가 언젠가는 폭발하게 될지도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지내는 형국이니 각별히 조심하도록 그에게 누차 경고를 하였건만 그는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그럭저럭 한 달인가 지나는 동안 J 소위의 주먹 횡포는 점입가경이었고 그럴수록 그가 나에게 갖는 불평과 불만은 점차 비등했으며 그 시비 정도가 이젠 극에 달하는 것이었다. 자기만 주먹을 쓰고 있어 인기가 하락될 우려가 있으니 공동 보조를 맞추어야 할 것 아니냐는 노골적인 불만과 아울러 모종의 도전을 해오는 것이었다. 

 그러구 보니 말로써는 안될 것 같아 아무래도 버릇을 좀 고쳐줘야겠다 싶어 어느 날 저녁 독신장교숙소(BOQ) 밖으로 그를 불러냈다. 
“야! J 소위! 식사 끝나면 신발끈 단단히 매고 좀 나와 줬으면 좋겠어.” 
이건 다분히 위협조였고 살벌하리만큼 공포 분위기였다. 
“그래? 네가 갑자기 웬 일이냐?” 
“내가 그동안 많이 참아왔는데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잠깐이면 될 거야.” 
 어느새 그와 나는 험상궂은 얼굴로 독신장교숙소(BOQ) 앞 언덕배기로 올라가 마주서게 되었다. 
“너 주먹이 꽤 쎈 모양인데 한 번 겨뤄보자! 기계체조만 빼놓구(그것만은 내가 자신이 없었음) 뭐든지 좋으니까 덤벼 봐.” 
선제공격의 기회를 너에게 줄테니 한 번 쳐보라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가 먼저 나를 쳐서 내가 KO되면 네 주먹이 쎈 걸 인정해 주겠거니와 한 방에 날 때려 눕히지 못하면 그 다음엔 넌 그걸로 끝장인 줄 알아.” 
다분히 엄포성 발언이요 여유로운 도전이었다. 한동안 당황한 나머지 꽤 의아스러웠던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야! 윤 소위 . 월산! 내가 잘못했다. 내가 졌어.” 
 머쓱해진 모습으로 우린 그렇게 주먹 대결의 기회를 무산시켰다. 
J 소위의 빈번한 손찌검은 급기야 사고를 내고야 말았으니 그와 내가 맞선 일이 있었던 그 며칠 후, 
비바람이 몹시 거세게 휘몰아치던 캄캄한 밤 갑자기 그가 황급히 독신장교숙소(BOQ)를 빠져 나가 어디론가 어둠속으로 급히 사라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밖에서 인기척이 요란한 것이었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만 켜 놓은 촛불이 휙 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야! J 소위, J 소위 어딨어. 너 이 00! 이리 나와.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넌 오늘 내 손에 죽는 거야 이 00아!” 
어느새 철커덕 철커덕 칼빈 소총의 노리쇠를 두 번 후퇴전진 시키니 실탄 두발이 콘크리트 바닥에 ‘툭 툭’ 떨어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렸다. 
일시에 내 몸은 얼어붙어 버렸다.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이! K 하사로구먼, 나 윤 소위야, J 소위 도망갔어. 그런데 불 좀 켜 봐, 불!” 
"난 담배를 안 피우니 성냥이 없고 갑자기 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촛불이 꺼졌으니 자네가 라이타나 성냥을 꺼내어 불을 켜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잠시 휘청이면서 망설이는듯 하던 K하사가 성냥을 꺼내어 불을 켜는 순간 나는 하나님께 다시한번 절박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잠시후 K 하사에게 물었다. 
“어이 K 하사 왜 그래? 나한테 유감있나?” 
 “윤 소위님께는 전혀 유감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그가 몹시 술에 취한상태 였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몸을 추스르려는 태도가 엿보였다. 
“그렇다면 날 쏘진 않겠군. 도대체 실탄 몇발이나 가지고 있나?” 
“왜 그러십니까? 실탄은 충분합니다.” 
얼핏 20발들이 긴 탄창으로보아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실탄 두발이면 충분해. 한발은 자네소대 소대장 J 소위를 쏘면되고, 한발은 소대장을 죽인 자네도 죽어야 할 것 아냐. 자네 특등사수잖아 안그래?” 
“그 나머지는 전부 내게 반납하지 그래, 사나이 답게.” 
K 하사가 무엇을 결심했는지 한발 한발 실탄을 헤아리면서 내게 건네주다말고 갑자기 무릎을 꿇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소대장님!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일단 K 하사의 한맺힌 하소연을 들으며 그를 진정시킨 나는, 

 “사나이로서 약속하건데 이 사실은 이세상에서 자네와 나만의 비밀로 할테니 없었던 일로 하자.”며 그를 설득하여 돌려 보냈고 얼마가 지난 후 혹시나 싶어 슬그머니 그의 소대 내무반밖에서 동정을 살피니, 

  “야! 불침번! 조금있다 독신장교숙소(BOQ) 에 올라가서 소대장 J 소위 00 왔는지 확인해서 나에게 알려줘. 알았어? 2소대장 윤 소위님만 같으면 참으로 군대생활 뽄때나게 해주고 싶은데, 세상에 우린 더럽게도 재수가 없단말이야.” 

마치 내가 밖에서 엿듯고 있음을 눈치라도 챈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술주정인지 잠꼬대인지를 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끔찍한 대형사고를 낼 뻔 했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휴우 ! 

 이튿날 해가 중천에 뜨고 난 훨씬 이후에 게면쩍은 얼굴로 나타난 J 소위가 뒷머리를 긁으며 하는 말, 
“야! 윤 소위 . 참으로 고맙다. 그리고 정말로 부끄럽다. 내 생명의 은인으로 알께.”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부른다. 아무리 타당한 이유와 목적 때문이라 해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만일 그때 J 소위가 현장에 있었더라면 그는 영락없이 K 하사의 총에 참변을 당했을 것이었다. 

 참으로 아찔했던 순간이었는데 그 사실을 J 소위, K 하사,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셋만의 영원한 비밀로 간직해왔던 나의 처신이 과연 잘 한 짓이었을까? 

김태정 기자  tvyonha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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